자연스럽게 그냥 내 몸의 흐름에 맡기면 됩니다. 그게 실상의 작용이거든요. 그렇게 살 때 우리는 그냥 이대로 부처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게 돼요. 다리가 아프면 내가 저절로 다리를 펴고 싶어요. 그런데 펴고 싶은데, 머릿속에서 펴면 안돼. 뒷사람이 너를 어떻게 보겠냐?
과도하게 몸을 혹사시켜서, 고행주의를 닦을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감각적인 욕망을 너무 쫓아갈 필요도 없는 것이죠. 너무 내가 하고싶은대로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 너무 감각적 욕망을 쫓아갈것도 없고 너무 고행주의를 쫓아갈것도 없고, 자연스럽게 하면된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린 이미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거든요.
자연스러움
목마르면 저절로 물을 찾죠. 저절로 물을 찾게 됩니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저절로 화장실을 찾게됩니다.
이젠 나다라는 생각이 생기게되고, 또 형제라는 생각, 너다, 나다라는 생각 차별심이 생각이 생기면서부터, 아상이라는게 조금,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처럼 최초의 분별심, 이 아무문제 없는, 이렇게 그냥 이미,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 이런 삶에서, 최초의 분별심인 아상이라는게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사실은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동작들이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그대로 사실은 실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고, 자성이 드러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머리를 가지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이건 맞았고, 저건 틀렸고, 이렇게 해야되고 저렇게 해야되고, 이렇게 살아야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느냐, 조금 더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어리석게 살고 있느냐?
뭔가 마음속에 불안함이 있으면, 불안함이 있는건 수행자가 아니야 불안함이 없애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바뀌어야돼라고 막 속삭이면서, 너는 평화로움으로 가야돼. 지금 불안한거는 잘못된거야라고 속삭이니까, 내 마음이 어떻게 되냐면, 중생심으로 떨어집니다.
불안한 마음
불안한 마음 자체가 불성이에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자체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인연따라 일어난 마음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불안한 마음자체가 올라온게, 인연따라 올라온 그게 문제가 아니라 불안한 마음은 나쁜거야, 답답한 마음은 나쁜거야, 그마음을 없애서, 평화로 가야돼.
지금 이 안좋은 상황을 버리고, 저 좋은 상황으로 옮겨가야돼. 지금 가난한 상황을 없애서, 좀 넉넉한 상황으로 바꿔 가야돼. 지금 마음에 뭔가 힘들고, 괴롭고, 답답한 일이 많은데, 이거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니까, 이 중생을 버리고 부처의 상황, 평화로운 상황, 고요한 상황, 내인생의 아무문제 없는 상황으로 옮겨가야돼라고, 머릿속으로 자꾸 속삭이는 마음 그게 중생심입니다.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이 중생심이 아니고, 그거를 그건 없애야되고 그게 취사간택심이거든요. 내가 기분 좋은 마음이 있으면, 이건 좋은 마음이야, 이건 좋은거니까 더 가져야돼해서 막 취하려고 애씁니다.
모처럼 명상을하다 보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러면 야, 이 명상하니까 좋구나, 이 편안한 마음은 자꾸 더 가지려고 애를 쓰고, 자식이나 남편이 뭔가 나한테 잘할때는, 야, 어쩜 저렇게 좀 맨날해줬으면 얼마나 좋겠어, 평소처럼 저렇게 나를 속 썩이지 않고 오늘처럼 저렇게 잘해주기만하면, 얼마나 좋겠어 하면서, 잘해주던때를 계속 지속시키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중생심입니다.
못해주는 그 자체가 문제가 없어요. 잘해주는 그 자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근데 못해줄때는 이 마음을 싫어하고, 나한테 잘해줬으면하고 바라는 마음. 또 잘해줄때는 항상 이렇게 좀 잘해주지, 왜 평소에는 그렇게 못해줬나하는 마음, 그 마음이 문제이지, 못해주던 잘해주던 괴로움이 일어나던, 즐거움이 일어나던, 그 마음은 사실은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뭐에요 그 마음에 내가 시비거는게 문제죠. 힘들고, 답답하고, 외롭고, 괴롭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막 질투심도 나고 남들과 비교 열등감도 느끼고, 그거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거를 가지고 지금 제가 말씀드렸던 이것들은 나쁜거야 ,나쁜거니까 이건 없애야돼 해서, 취사심, 버리려는 마음, 밀쳐내려는 마음을 일으키는거 그게 중생심이라는것이죠.
취하려는 마음
좋은거, 행복한거, 나를 기쁘게 해주는거, 이거는 취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이 가져야돼하고, 취하려는 마음, 아직은 부족하니까, 미래를 향해서 추구함으로써, 더 부자 더 행복함, 더 평화로움, 자식이 더 잘되고, 남편이 잘되고, 내가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진 삶, 그것을 추구하는 삶, 그게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헐떡거리는 삶을 멈출길이 없습니다.
취사간택하기위해서, 끊임없이 밖을 향해 쫓아나서야돼요. 좋은거는 더 갖지 못해서, 애써야되니까 힘들죠. 그게 유위법이라 그래서 유위행 조작, 유위 조작입니다. 좋은걸 더 갖고 싶어서, 막 애쓰는 마음, 이 유위조작이에요. 그러니까 인생이 고되고, 스트레스 받습니다. 원하는대로 다 가져지지 않거든요. 가져지는것도 있고 가져지지 않는것도 있거든요.
그런데 나는 가져줘야돼하고 집착하니까, 가져지지 않을 때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또 싫은것들은 오기도하고, 안오기도한단말이죠. 근데 싫은건 오면 안돼하고 버리려고 애쓰는 마음을 가지니까, 내 생각이 만든거잖아요.
취사심은 내 생각이 만든거죠. 분별심이 만들었습니다. 근데 취사간택심이 없으면, 분별심이 없으면, 그게 무분별심이죠. 반야지혜는 무분별지가 반야지혜라고 했습니다. 금강반야바라밀의 지혜. 금강반야의 지혜가 바로 무분별지라고했습니다.
무분별지는 취사간택심이 없는 마음, 취사심이 없는 마음은 뭘까요? 좋은거를 쫓아가지 않고, 싫은거를 버리려고하지 않는 것. 그럼 뭐겠어요? 지금이대로죠. 지금이대로 벌어지는 이마음, 지금 이대로 일어나는 이마음, 내가 뭔가 부족하다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냥 부족하다는 그니까 지금까지는 부족한 마음이 일어나서, 뭔가 좋은걸 얻어야돼라는 마음이 일어나면, 얻기전까지는 안심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이 부족한 것, 초조한 것, 답답한걸 없애려고 애썼는데, 반야지혜, 금강반야의 지혜를 얻으려면, 무분별지를 증득하려면 간단합니다.
중도수행, 불이법의 수행, 반야바라밀의 수행은 뭐냐? 진실에 서있는거에요.
취사간택심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고, 근데 진실은 어디있어요. 지금 이순간에, 언제나 드러나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에, 언제나 이렇게 작용하고 있어요.
몸이 아픕니다, 지금. 몸이 아프면, 지금 이순간에 몸이 아픈걸로서, 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초조함으로써, 불안함으로써, 지금 진실이 드러나고있어요. 근데 이걸 없애야된다라는 생각을 가짐으로써 중생심을 곧장 붙잡는것이죠. 취사심을. 근데 그러지말아보라는것이죠.